논술 과제에서 AI에게 반대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괜찮을까. 문장 표현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학생에게 자기 생각을 쓰라고 요구하려면, 먼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제출이 끝난 뒤에야 기준을 밝히는 평가로는 학생에게 공정한 선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기도교육청은 9월 30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중등 논술형 평가 포럼을 열었다고 발표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교원·학부모·교육지원청 담당자 등 150여 명이 참여했고, AI 시대에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에 관한 강연과 교육공동체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교육청은 논술형 평가 정책과 현장 지원을 구체화하는 데 의견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평가 방향을 논의한 행사에 관한 자료다. AI 사용 허용 범위나 새로운 채점 기준이 모든 학교에 확정·적용됐다는 발표는 아니다. 참여자의 경험을 소개한 부분도 논술형 평가의 효과를 모든 학생에게 일반화할 실험 결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논의는 학교가 학생에게 어떤 안내를 먼저 해야 할지 묻는 계기가 된다.

필자는 논술형 평가를 논의할 때 과제 안내문의 AI 사용 기준부터 구체화해야 한다고 본다. ‘AI 사용 가능’이나 ‘사용 금지’라는 한 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료 탐색, 아이디어 비교, 개요 구성, 문장 수정, 최종 답안 작성은 서로 다른 활동이다. 이번 과제에서 학생이 직접 보여줘야 하는 능력이 무엇인지에 따라 허용할 도움의 범위도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스스로 논거를 고르는 능력을 평가한다면, AI가 제안한 근거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허용할지 사전에 정해야 한다. 반대로 서로 다른 설명의 약점을 찾는 수업이라면, 교사가 제공한 AI 답변을 비판하는 활동을 과제로 설계할 수 있다. 이는 실제 학교 사례를 옮긴 것이 아니라, 평가 목표에 맞춰 규칙을 나누자는 설계 예시다. 도구 이름보다 학생에게 요구하는 판단이 먼저여야 한다.

유네스코의 2023년 『교육과 연구에서의 생성형 AI 활용 지침』도 생성형 AI가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과제 부정행위 문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6.5절은 무엇을 왜 배우며 어떻게 배움을 평가하고 확인할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AI가 만든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과 함께 기초 지식·기능의 중요성도 짚는다. 이 국제 지침은 국내 학교의 현행 채점 규정이나 특정 수업의 효과를 입증한 실험 보고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과제 안내에는 세 가지가 함께 적히면 좋겠다. 무엇을 학생 혼자 해야 하는지, 어떤 단계에서 외부 도구를 쓸 수 있는지, 도움받은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표시할지다. AI를 사용한 학생에게만 긴 해명서를 요구하기보다, 모든 학생이 참고 자료와 작업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는 공통 형식을 마련하는 편이 낫다. 기준은 학생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알려야 한다.

과정 확인도 과도한 감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대화 기록과 화면을 제출하게 하면 과제와 무관한 개인정보까지 드러날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핵심 자료를 고른 이유, 처음 생각에서 달라진 부분, 최종 주장에 동의하는 이유를 짧게 설명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출한 글의 판단을 학생 자신의 말로 확인하되, 불필요한 정보 수집은 줄이자는 취지다.

도구를 허용할 때는 이용 여건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유료 서비스나 개인 기기의 보유 여부가 평가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학교가 공통 자료를 제공하거나 수업 안에서 사용할 시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말로 설명하는 능력과 글을 구성하는 능력을 혼동하지 않도록, 과정 확인 방법도 평가 목표에 맞춰 선택해야 한다. 이런 조건 없이 ‘AI를 잘 활용하라’고만 하면 학생은 무엇으로 평가받는지 알기 어렵다.

교사에게도 혼자 규칙을 만들라는 주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학교 차원에서 과제 안내 예시와 사용 내역 표시 방식을 공유하고, 교과별로 조정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학부모에게는 결과물의 매끈함보다 자녀가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 달라고 안내할 수 있다. 논술형 평가가 생각하는 힘을 보려면, 학생이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규칙부터 제공해야 한다.

출처와 편집 정보

확인: 2026-10-01 · 필자의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