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는 순간은 반갑다. 그러나 책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곧 누구에게나 보여줘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 아이에게는 작품을 나누는 기쁨과 함께, 어디까지 나눌지 생각할 자리도 필요하다.
경기도교육청은 10월 16일 유아의 말과 그림, 놀이와 일상 경험을 그림책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2026 경기유아 PLAY-RAS 방과후 상상책방’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도내 유치원에 참여 방법을 안내하고 10월 30일까지 이야기를 집중 접수한다는 내용이다. 접수 작품은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공개 적합성 등을 검토한 뒤 온라인 상상책장에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또 작품 간 우열을 가리는 심사나 시상 없이 참여와 공유에 가치를 둔다고 밝혔다. 이 방향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공개 적합성을 살피는 운영 절차와, 아이가 자기 작품의 독자를 생각해 보는 교육적 과정은 서로 다른 일이다. 이 칼럼은 해당 사업의 실제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아니라, 창작과 공유를 연결할 때 더해 보고 싶은 제안이다.
만들기와 공개하기 사이에 대화를 두자
어른에게 온라인 공개는 작품을 널리 알리는 방법일 수 있다. 아이에게는 우선 누가 이 책을 읽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함께 생활하는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 가족과 읽는 것, 온라인 공간에 올리는 것은 독자의 범위가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은 채 작품이 완성됐으니 올리자고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의 의견을 묻는 방식도 결과를 미리 정해 놓지 않아야 한다. 교실에서 먼저 읽고 싶은지, 가족에게만 보여주고 싶은지, 조금 더 고쳐 본 뒤 나누고 싶은지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플랫폼에 이런 선택 기능이 이미 있다는 설명이 아니라, 교사와 보호자가 작품을 다루는 과정에서 제안하는 대화다.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자는 뜻도 아니다. 공개의 의미와 결과를 충분히 알기 어려운 나이인 만큼 어른이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어른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망설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오늘은 보여주기 싫다는 반응도 창작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책 속에 다른 사람의 일상이 들어갈 때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삼는다면 이야기에는 가족이나 친구가 등장할 수 있다. 이때는 문장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일에 앞서, 등장한 사람이 읽었을 때 어떤 마음일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정 친구를 쉽게 알아볼 만한 내용인지, 가족끼리만 나눴던 일을 그대로 담았는지 살피는 시간을 두자는 제안이다.
그 과정이 아이의 이야기를 어른의 모범 답안으로 바꾸는 작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표현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 이유를 설명하고, 아이가 말하고 싶었던 뜻을 다른 방식으로 담을 수 있는지 함께 찾아보자. 무엇을 숨기라고 지시하는 데 그치기보다, 자신의 표현과 다른 사람의 생활을 함께 존중하는 연습으로 삼았으면 한다.
공개된 책의 수만으로 배움을 세지 말자
사업이 경쟁과 시상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현장의 성과를 공개 작품 수로만 확인하면 다른 압박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이번 사업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운영을 살필 때 경계하고 싶은 가능성이다. 아직 밖에 내놓지 않은 이야기, 교실에서만 돌려 읽은 책, 여러 번 고쳐 쓰는 중인 작품도 창작의 과정으로 인정해야 한다.
교사와 보호자에게는 작품을 올리는 방법뿐 아니라 공개 전 무엇을 설명하고 확인할지에 관한 안내도 도움이 되겠다. 공개한 뒤 생각이 달라졌을 때 어디에 문의할 수 있는지, 수정이나 공개 범위에 관한 요청은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도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플랫폼의 세부 기능이나 처리 절차를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판단의 출발점은 도교육청 게시문과 첨부 보도자료다. 두 문서는 같은 기관의 발표이며, 실제 이용자의 경험이나 독립된 운영 평가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사업의 효과나 개별 작품의 처리 결과를 평가할 수는 없다. 공개 전 검토와 비경쟁이라는 발표 방침을 바탕으로, 아이의 의사를 듣는 과정을 더하자는 의견이다.
아이를 작가로 부른다면 작품의 완성뿐 아니라 독자를 만나는 방식에도 그 아이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책이 된 것을 축하하는 말 다음에, 누구와 어떻게 읽고 싶은지 물어보자. 공유의 기쁨은 보여줄 준비가 됐는지 묻는 대화와 함께 자랐으면 한다.
- 경기도교육청 — 방과후 상상책방 운영 발표 · 2026-10-16
- 경기도교육청 첨부 보도자료 원문 · 2026-10-16
- 경기도교육청 방과후 상상책방 공식 안내장 · 2026-10-16
확인: 2026-10-17 · 필자의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